82년생 아나스타샤(우크라이나침공)

1982년
소비에트 연방에 태어난 아나스타샤.
여느때 처럼 출근하는 아빠를 보며 함박 웃음을 짓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아냐의 아빠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 했던 것이었고
그 모습은 아냐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냐의 엄마는 아빠의 전사통지서를 들고 아냐를 꼬옥 안아줄 뿐이었다.
아냐는 적막 속에서 등이 젖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99년
소련은 망했지만 아냐는 러시아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아냐 앞에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어리숙하지만 솔직한 그의 모습에 반했고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아냐가 사랑의 결실을 뱃속에 품게 되었을 때
아냐의 남편은 갑작스럽게 참전을 하게 된다.

아냐의 남편은 2차 체첸전쟁에 투입 되었다.
분명 남편은 금방 돌아온다고 했지만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렇게 아냐는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게 되었다.

2021년
세월은 손에 잡힐듯 흘러가는 강물 같았다.
아냐의 아들은 어른이 되었고 국가를 위해 입대하게 되었다.
풍족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사랑 만큼은 그 어떤 부모 보다도 풍족하게 주었다 자신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잠시 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때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겠는가.

입대 후에도 아들은 주기적으로 아냐에게 전화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선임들도 좋고 밥도 잘 먹고 있다고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이번에 혹한기 훈련을 하는데 조금 걱정이 된다고는 했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아냐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아들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훈련이 길어지는 것이겠지 마음을 달래봐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의 부대에 전화 해봐도 아들은 혹한기 훈련 때문에 부대 밖으로 나가 있다는 말 뿐이었다.

TV에서 푸틴 대통령이 나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을 진행한다고 연설한다.
아들하고는 관계 없겠지
아들은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을 뿐이니깐.
하지만 불안함은 가실 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과거가 무뎌진 줄 알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아닐 거야.

'똑똑똑똑'
문을 열어보니 옆집 니콜라이씨였다.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불안한 눈가의 떨림은 아냐를 놀라게 만들었다.
"아냐스타샤씨, 이...이...이거 보셨나요?"
니콜라이씨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잡은 러시아군 포로.
거지꼴이 된 러시아 군인들 속에 보이는 아들의 얼굴.
훈련 하고 있는줄만 알았던 아들이 생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 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아냐도 궁금했다.
아냐는 당장 부대에 전화를 걸었지만 자기들도 모른다는 원론적인 답변 뿐.
분노와 슬픔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을 뿐이었다.

아냐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의 슬픔을 목도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전쟁으로 러시아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비극으로 점철되게 되었는데
러일전쟁 - 1차세계대전 - 적백내전 - 대숙청과 대기근 - 2차세계대전 - 아프간 전쟁 - 체첸 전쟁 - 우크라이나 전쟁 까지
사실상 20~21세기 집안의 모든 세대가 전쟁을 경험했고, 집안마다 사망자가 안나온 집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할머니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데, 보통 전쟁으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전사하거나
조혼으로 어머니가 아직 어리다면 아이를 길러주는 건 보통 할머니이니깐요
또한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의 부모가 직접 우크라이나로 온다면
해당 포로의 신병을 인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